왜 ‘느리게 뛰기’가 하나의 운동법이 되었을까요? 이번 1편에서는 슬로우조깅이 탄생한 연구 배경과 니코니코 페이스의 의미, 일본에서 시작해 한국에서 다시 주목받기까지의 흐름을 살펴봅니다.
슬로우조깅은 단순히 천천히 달리는 것이 아닙니다. ‘빨리 달려야 운동이 된다’는 오래된 통념과 달리, 몸에 과도한 부담을 주지 않으면서도 꾸준히 지속할 수 있는 운동 강도를 찾으려는 운동생리학 연구에서 발전한 방법입니다.
이 운동법의 중심에는 일본 후쿠오카대학교 스포츠과학부의 운동생리학자 다나카 히로아키(Hiroaki Tanaka) 교수가 있습니다. 일본슬로우조깅협회는 다나카 교수가 40년 이상 연구해 온 ‘니코니코 페이스(niko niko pace)’ 운동을 바탕으로 슬로우조깅이 만들어졌다고 설명합니다. ‘니코니코’는 일본어로 방긋방긋 웃는 모습을 뜻합니다. 말 그대로 옆 사람과 웃으며 대화할 수 있을 만큼 편안한 강도가 출발점입니다.
달리기는 왜 늘 ‘힘들어야 한다’고 생각했을까
많은 사람에게 달리기는 숨이 차고 땀이 많이 나야 효과가 있는 운동으로 인식돼 왔습니다. 특히 체력이 약하거나 나이가 들수록 조깅은 ‘젊고 건강한 사람이 하는 운동’처럼 느껴지기도 합니다.
다나카 교수 연구진이 주목한 것은 반대 방향이었습니다. 강도를 낮추면 운동을 더 안전하고 오래 지속할 수 있고, 그 정도의 낮은 강도에서도 건강·체력 개선 효과를 얻을 수 있지 않을까라는 질문입니다. 다나카 교수는 2005년 일본체력의학회 학술지에 발표한 ‘니코니코 페이스의 효용’에서, 연구팀이 오랫동안 가벼운 강도의 운동과 유산소 체력 향상, 건강 증진의 관계를 연구해 왔다고 정리했습니다.
여기서 중요한 점은 슬로우조깅이 어느 날 갑자기 만들어진 유행 운동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운동 강도, 혈중 젖산, 유산소 능력, 생활습관병 예방을 연구하던 학문적 흐름이 시민이 쉽게 실천할 수 있는 형태로 바뀐 결과에 가깝습니다.
핵심 개념 ‘니코니코 페이스’는 무엇인가
운동생리학에서 운동 강도가 높아지면 어느 지점부터 혈중 젖산이 빠르게 증가하기 시작합니다. 이를 젖산역치(lactate threshold·LT)라고 부릅니다. 다나카 교수의 연구에서 니코니코 페이스는 대체로 이 역치 부근의 비교적 부담이 낮은 운동 강도와 연결돼 설명됩니다.
하지만 일반인이 운동할 때마다 혈액을 채취해 젖산을 측정할 수는 없습니다. 그래서 니코니코 페이스는 훨씬 쉬운 말로 번역됩니다. 숨이 너무 차지 않아 대화를 이어갈 수 있고, 표정이 굳지 않을 정도의 편안한 속도입니다. 체력이 낮은 사람에게는 시속 3~5km처럼 평소 걷는 속도와 비슷하거나 오히려 더 느릴 수도 있습니다.
슬로우조깅의 역설
달리기인데 걷는 사람보다 느릴 수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속도가 아니라 ‘뛰는 동작을 편안한 강도로 오래 지속하는 것’입니다.

연구실의 개념이 시민 운동으로 나오기까지
니코니코 페이스는 연구실 안의 이론에 머물지 않았습니다. 후쿠오카대학교에서는 일반 시민에게 달리기와 운동생리학을 가르치는 프로그램을 운영했고, 2003년부터 시민 마라톤 강좌에서 니코니코 페이스의 슬로우조깅을 주요 실기로 활용했다는 기록도 남아 있습니다. 운동 경험이 거의 없거나 생활습관병이 있는 사람도 무리하지 않는 속도로 달리기를 시작하는 방식이었습니다.
2005년에는 다나카 교수가 일본체력의학회에서 ‘니코니코 페이스의 효용’을 학술적으로 정리했습니다. 이후 슬로우조깅이라는 이름과 실천법이 점차 대중에게 알려졌고, 일본슬로우조깅협회에 따르면 2009년 일본 NHK 방송에서 소개된 것이 대중적 인지도를 크게 높이는 계기가 됐습니다.
2009년 이후 ‘느리게 달리기’가 하나의 방법론이 되다
슬로우조깅이 알려지면서 핵심은 점점 명확해졌습니다. 남보다 빠르게 뛰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 자신의 체력에 맞춰 웃을 수 있을 정도의 속도로 달리고, 운동을 생활 속에서 오래 지속하는 것입니다.
이 철학은 기존 러닝 문화와 상당히 달랐습니다. 기록, 거리, 페이스 경쟁을 중시하는 달리기에서 벗어나 ‘느려도 된다’는 메시지를 앞세웠기 때문입니다. 특히 운동을 시작하기 두려운 중장년층과 시니어, 비만이나 만성질환 때문에 고강도 운동을 부담스러워하는 사람에게 접근하기 쉬운 방식이었습니다.
다나카 교수와 연구진은 이후에도 슬로우조깅과 저강도 운동의 효과를 연구했고, 이 개념은 일본 밖으로도 확산됐습니다. 2016년에는 다나카 교수와 마그달레나 야코프스카(Magdalena Jackowska)가 영어권 독자를 위한 책 Slow Jogging: Lose Weight, Stay Healthy, and Have Fun with Science-Based, Natural Running을 출간했습니다. 니코니코 페이스와 착지, 보폭, 운동 지속 방법 등이 영어로 체계적으로 소개되면서 국제적인 확산에도 도움이 됐습니다.
한국에는 언제 들어왔을까
한국에서도 슬로우조깅은 최근 갑자기 생겨난 운동이 아닙니다. 2026년 코리아중앙데일리 보도에 따르면 한국에서는 2010년대 중반부터 슬로우조깅이 본격적으로 알려지기 시작했고, 한국슬로우조깅협회는 2016년 설립돼 교육과 동호회, 지도자 양성 활동을 이어왔습니다.
다만 오랫동안 일부 운동 동호인과 교육 참가자 중심의 활동에 가까웠습니다. 분위기가 크게 달라진 것은 최근입니다. 짧은 보폭으로 통통 뛰는 모습이 방송과 소셜미디어를 통해 널리 알려지면서 2026년에는 30~60대는 물론 더 고령층까지 참여하는 운동으로 다시 주목받고 있습니다. 해외 소셜미디어에서는 한국식 단체 슬로우조깅 영상이 확산되면서 ‘K-slow jogging’이라는 표현까지 등장했습니다.
슬로우조깅 역사 한눈에 보기
| 시기 | 주요 흐름 |
|---|---|
| 수십 년간 | 후쿠오카대 다나카 교수 연구진이 낮은 강도의 운동, 젖산역치와 건강·체력 향상을 연구 |
| 2003년~ | 후쿠오카대 시민 마라톤 강좌 등에서 니코니코 페이스 기반 슬로우조깅을 실천 프로그램으로 활용 |
| 2005년 | 다나카 교수의 ‘니코니코 페이스의 효용’ 학술 발표 |
| 2009년 | 일본 NHK 방송 소개를 계기로 대중적 관심 확대 |
| 2016년 | 영문판 Slow Jogging 출간, 한국슬로우조깅협회 설립 |
| 2017년 | 평균 70세 안팎 고령자 대상 12주 슬로우조깅 무작위 대조시험 결과 학술지 게재 |
| 2026년 | 한국에서 방송·SNS와 동호회를 중심으로 대중적 관심이 크게 확대 |
왜 지금 시니어 운동으로 다시 주목받을까
슬로우조깅의 역사에서 가장 흥미로운 부분은 ‘느림’이 약점이 아니라 설계 원리라는 점입니다. 나이가 들수록 운동은 강도 못지않게 지속 가능성이 중요합니다. 숨이 턱까지 차는 운동은 한두 번 할 수 있어도 매일 또는 매주 꾸준히 이어가기 어렵습니다.
슬로우조깅은 바로 이 지점에서 시니어 운동과 맞닿습니다. 2017년 European Journal of Applied Physiology에 발표된 무작위 대조시험에서는 평균 70.8세의 지역사회 노인 81명을 대상으로, 1분 슬로우조깅과 1분 걷기를 번갈아 시행하는 12주 프로그램을 평가했습니다. 연구를 완료한 참가자들에서 슬로우조깅군은 대조군보다 유산소 능력과 앉았다 일어서기 기능이 더 크게 개선됐고, 허벅지 근육 내 지방 등 신체조성 지표도 개선됐습니다.
이 연구 하나만으로 모든 고령자에게 슬로우조깅이 적합하다고 단정할 수는 없습니다. 심혈관질환, 심한 관절질환, 균형장애나 낙상 위험이 있는 사람은 개인 상태에 따른 판단이 필요합니다. 다만 ‘운동은 세야 효과가 있다’는 생각에서 벗어나, 낮은 강도로도 꾸준히 움직이는 방법을 연구해 왔다는 점이 슬로우조깅의 역사적 의미입니다.
슬로우조깅을 이해하는 세 가지 핵심
- 첫째, 속도가 기준이 아닙니다. 사람마다 체력이 다르므로 같은 시속 4km라도 누구에게는 편하고 누구에게는 힘들 수 있습니다.
- 둘째, ‘니코니코 페이스’가 핵심입니다. 옆 사람과 대화가 가능할 만큼 편안한 강도를 찾는 것이 출발점입니다.
- 셋째, 오래 지속하는 운동이라는 철학이 중요합니다. 기록 경쟁보다 건강을 위해 평생 이어갈 수 있는 움직임에 가깝습니다.
2편에서는 ‘얼마나 느리게 뛰어야 하는가?’를 실제로 풀어봅니다. 니코니코 페이스 찾는 법, 걷기와의 차이, 작은 보폭, 착지, 호흡, 초보자의 1분 조깅+걷기 방법까지 단계별로 정리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