잃지 않고도 되찾는 것들
10월 5일 월요일 아침, 나는 출근했다. 정말로 출근했다.
알람이 울리자 일어났고, 씻었고, 서둘러 옷을 입었다. 평소 하던 아침 운동은 시간에 쫓겨 절반도 못 마쳤다.
출근 준비에 집 안을 바쁘게 오갔다.
오전 6시 30분, 집을 나섰다.
오늘은 월요일이었다.
내 몸은 월요일을 정확히 기억하고 있었다.
다만 내 머리가 한 가지를 잊고 있었다.
10월 3일 개천절이 토요일이어서 오늘이 대체공휴일이라는 사실이었다. 금요일까지만 해도 분명히 알고 있었다. 토요일, 일요일, 월요일. 사흘을 쉰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그런데 주말 이틀을 지나는 동안 그 기억은 서랍속에 차곡이 쌓여져 있었다.
월요일 아침이 오자 수십 년 동안 몸에 밴 습관이 기억보다 먼저 일어났다. 출근해야 한다는 사실에는 아무런 의심도 없었다.
차를 몰고 익숙한 길을 달렸다.
얼마쯤 가서 고속도로 진입로에 가까워졌을 때였다.
이상했다.
차가 너무 없었다.

평일 아침의 도로에는 특유의 표정이 있다. 차들은 꼬리를 물고 늘어서고, 조금이라도 빈틈이 생기면 그 안으로 들어간다. 사람의 얼굴은 보이지 않아도 모두가 어디론가 서두르고 있다는 것은 알 수 있다.
그런데 그날 아침의 도로에는 조급함이 없었다.
차선은 비어 있었고, 도로는 넓어 보였다.
아차. 오늘 쉬는 날이지. 혼자 웃음이 났다.
이어서 생각이 났다. 이번 주는 금요일도 쉬는 날이다.
좋은 생각은 연이어 나나보다.
불과 몇 초 전까지 나는 출근하는 사람이었다. 그런데 갑자기 출근하지 않아도 되는 사람이 되었다.
세상은 아무것도 바뀌지 않았다.
도로도 그대로였고, 집도 그대로였고, 오늘이 10월 5일이라는 사실도 그대로였다.
달라진 것은 내 머릿속의 생각 하나뿐이었다.
나는 차를 돌렸다.
오전 7시, 다시 집에 도착했다.
집을 나선 지 삼십 분 만이었다.
현관문을 열면서 묘한 기분이 들었다.
분명 조금 전에 나온 집인데 다른 집 같았다. 6시의 집은 떠나야 하는 곳이었다. 서둘러 신발을 신고 문을 닫아야 하는 곳이었다.
7시의 집은 분위기가 달랐다.
하루 종일 머물러도 되는 곳이었다.
현관도, 거실도, 창문으로 들어오는 아침빛도 그대로였는데 집 안의 시간이 달라져 있었다.
나는 갑자기 하루를 얻었다.
물론 없던 하루가 생긴 것은 아니다. 오늘은 처음부터 휴일이었다. 달력에는 오래전부터 붉은 숫자로 표시되어 있었을 것이다.
그러니 정확하게 말하면 나는 하루를 얻은 것이 아니다.
돌려받았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돌려받은 것은 원래 가지고 있던 것보다 귀했다.
아침에 눈을 뜨면서부터 오늘이 휴일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면 어땠을까.
조금 더 잤을 것이다. 침대에 누워 TV를 켰을수도 있다. 일어나서도 서두르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다 오전이 지나고 점심때쯤이면 이렇게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벌써 반나절이 갔네.
그랬다면 오늘은 그저 휴일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오늘을 한 번 출근하는 날로 살았다가 돌려받았다.
그래서 하루의 가치가 달라졌다.
생각해보면 사람은 가지고 있는 것의 가치를 잘 모른다.
건강할 때는 건강을 생각하지 않는다.
늘 곁에 있는 사람에게는 고맙다는 말을 미룬다.
매일 돌아갈 수 있는 집이 있다는 것도 특별하게 여기지 않는다.
시간도 그렇다.
오늘 하루가 내 앞에 있다는 것은 너무 당연해서, 우리는 그것이 얼마나 큰 것인지 좀처럼 생각하지 않는다.
그런데 잃어버렸다고 생각한 것이 다시 돌아오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큰 병일지도 모른다는 걱정을 안고 병원에 갔다가 별일 아니라는 말을 듣고 나오는 날, 병원 앞의 평범한 거리조차 전과 다르게 보이는 것처럼.
세상은 달라지지 않았다.
내가 그것을 바라보는 마음이 달라졌을 뿐이다.
나는 아무것도 잃지 않았는데 무언가를 되찾았다.
하루였다.
돌아오는 길에 문득 재밌는 생각이 들었다.
혹시 나의 뇌가 나에게 가르침을 주고 싶었던 것은 아닐까.
정년퇴직도 얼마 안남고 바쁘게 살고 있는 나에게 잠시 인생을 돌아보게 만들고 싶었던 것은 아닐까.
휴일이라는 기억을 잠시 서랍 깊숙이 넣어두었다가, 내가 일찍 일어나고, 씻고, 운동까지 줄여가며 출근 준비를 하고, 차를 몰고 고속도로 앞까지 갔을 때 슬며시 서랍을 열어준 것은 아닐까.
‘자, 여기 너에게 주는 선물이야.’
시간이 소중하다는 말을 수없이 들어왔지만 그 말은 너무 익숙해서 이제 별다른 울림도 없다.
어쩌면 우리는 하루를 사는 것이 아니라 하루에 붙여진 이름표대로 따라가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런데 그날 아침에는 ‘출근하는 월요일’이라는 이름표가 갑자기 떨어졌다.
‘출근’,‘회의’,‘업무’,‘약속’ 같은 이름표에 가려져 보이지 않았던 것이 해야 할 일이 사라지자 그 자리에 시간이 나타났다.
시간은 원래부터 거기에 있었고 내가 보지 못했을 뿐이었다.
오전 7시.
나는 현관문을 열고 다시 집으로 들어갔다.
평소 같으면 출근길 한가운데 있었을 시간이었다. 그런데 그날의 나는 이미 한 번 세상에 나갔다가 돌아온 사람이었다.
씻은 얼굴도 그대로였고, 옷도 다 입었고, 정신은 완전히 깨어 있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하루가 거의 온전하게 남아 있었다.
아침에 하다 만 운동이 생각났다.
절반밖에 하지 못했으니 아직 절반이 남아 있었다.
마무리 할 수 있는 시간이 갑자기 주어졌다.
살아가면서 이런 날이 몇 번이나 더 있을까.
잃어버린 줄 알았는데 아직 내게 있는 것.
끝난 줄 알았는데 아직 남아 있는 것.
너무 익숙해서 보이지 않다가 어느 날 갑자기 선명해지는 것.
오늘은 성실한 착각이 오히려 나의 하루를 풍요롭게 만들었다.
시간을 꼭 무엇인가로 채워야 가치 있는 것은 아니다.
출근하지 않아도 되는 아침, 아무에게도 시간을 내어주지 않아도 되는 몇 시간, 특별히 생산적인 일을 하지 않아도 되는 하루는 그 자체로 귀하다.
어쩌면 인생 전체도 오늘의 휴일과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우리는 흔히 앞으로 남은 시간을 센다. 몇 년 남았는지, 언제 퇴직하는지, 그 뒤에는 무엇을 할지. 그러다 보면 아직 오지도 않은 시간에 미리 이름표를 붙이고 그 다음 시간을 준비하며 살아간다.
그런데 오늘 아침의 경험은 내게 조금 다른 이야기를 해주었다.
남은 시간이 얼마나 되는가보다, 내 앞에 있는 오늘을 내가 발견하고 있는가.
삶에서 중요한 것은 시간을 더 얻는 일이 아니고, 이미 내게 주어진 시간을 발견하는 일인지도 모른다.
오늘 아침 내가 되찾은 것은 사실 아무것도 없었다.
휴일은 처음부터 내 것이었고, 하루도 사라진 적이 없었다.
그런데도 나는 하루를 돌려받았다고 느꼈다.
생각해보면 삶에는 그런 것들이 있다.
건강도, 사람도, 시간도 아직 내 곁에 있는데 어느 순간 새삼 그것이 내게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되는 때가 있다. 그 순간, 당연했던 것은 귀한 선물이 된다.
아마 삶의 가치는 무언가 더 많이 가지는 것에만 있지는 않을 것이다.
이미 가지고 있는 것을 어느 순간 발견하느냐에 따라서도 달라질 것이다.
10월 5일 월요일 아침.
나는 출근했다.
그리고 출근하지 않았다.
삼십 분을 돌아 다시 현관문을 열었을 때,
하루는 거의 그대로 남아 있었다.
나는 아무것도 잃지 않았다.
그런데 하루를 돌려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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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 수정일: 2026년 10월 5일
